[천지일보 문화단독] 잃어버린 왕국 ‘실직국’ 옛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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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에서 원삼국시대 치소 큰 토성 발견

고구려 상부 지칭하는 명 적색와편 수습

연화문·자 와편 등 다수 찾아져

고대 성터 확인시 사적공원 계획도

 

[천지일보=이태교 기자] 원삼국시대 성읍국가의 치소로 보이는 야산 능선에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의 흔적. 토성은 적의 침입 등에 대비해 인위적으로 흙을 다져 주변 지세보다 높게 쌓아 만든 성루를 말한다. 사진의 나무사이로 보이는 흙바닥이 토루의 흔적이다. ⓒ천지일보 2021.7.28
[천지일보=이태교 기자] 원삼국시대 성읍국가의 치소로 보이는 야산 능선에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의 흔적. 토성은 적의 침입 등에 대비해 인위적으로 흙을 다져 주변 지세보다 높게 쌓아 만든 성루를 말한다. 사진의 나무사이로 보이는 흙바닥이 토루의 흔적이다. ⓒ천지일보 2021.7.28

실직국(悉直國), 실직곡국(悉直谷國)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지금의 동해시, 삼척시에 자리 잡았던 고대 국가였다. 원삼국시대 동해변을 거점으로 성읍국가로 성장한 고대 왕국이었다.

실질국의 지배자는 왕이란 칭호를 받았으며 해상을 이용해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실직국은 신라초기 영토분쟁으로 혼란을 겪다 틈새를 노린 신흥국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잃어버린 왕국으로 그 역사가 묻혀 있다.

동해시 망상 해수욕장에서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단장 이재준 고문)과 글마루 취재반은 잃어버린 왕국 실직국 찾기에 나섰다. 이재준 고문은 현재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조사단을 이끌고 글마루에 ‘고구려유적답사시리즈’를 2년 반 넘게 집필하고 있다.

이 고문이 집필한 글마루 글 일부를 미리 소개한다.

◆‘실직’이란 무슨 뜻일까

북한 국어학자 류렬은 실직(悉直)과 사직(史直)을 ‘시(shi)디’ ‘시(shi)더’로 해석했다. 삼척의 삼(三)은 ‘시’ ‘서’에 대한 음운이화(같거나 비슷한 소리들이 다른 소리로 바뀌는 것)로 ‘셋’의형태라고 봤다. 실직국의 고지가 옛날 삼척에 있다는 것을 이 해석으로 판단한 것이다. 학자들은 실직국 원주민들이 강릉지역 일대에 웅거했던 맥국(貊國) 계열로 해석하기도 한다.

‘맥국’은 과연 어떤 민족을 가리키는 것일까. 맥(貊)은 통칭 예맥족으로 만주 유역에서 집단 이주한 고구려계라는 것이다. 강원도 춘천에 웅거했던 맥국 집단을 ‘말갈’의 일단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에서 말갈은 고구려의 별종(別種) 세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구려와는 같은 언어로 소통했으며 주몽에 의해 압록강을 다시 확보한 고구려에 흡수되어 살았다.

북쪽에서 해안을 따라 남하한 맥족의 일부가 삼척, 동해시 일원에 성을 구축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한 춘천 맥국 집단과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치소는 어디이며 어떤 문화를 지니며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고구려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고구려 장수왕은 왜 실직국성을 회복하기 위해 1만명의 말갈군대를 동원해 실지(失地)를 회복한 것일까.


◆남진 장수왕이 점령한 ‘실직국’

‘삼국사기’ 권 제18 장수왕 56(468)년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장수왕 56년 2월 왕은 말갈 군사 1만명으로 신라의 실직주성을 공취하였다. 4월에 사신을 위에 파견하여 조공하였다(五十六年 春 二月. 王以 靺鞨兵一萬. 攻取新羅悉直州城. 夏四月遣使入魏朝貢).”

이때는 장수왕이 백제 왕도 위례성을 공략하기 7년 전의 일이다. 장수왕은 실직국성의 탈환을 먼저 감행한 것이다. 그것도 말갈 대군을 시켜 공취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2세기 초반부터 강릉 일대 동해안 지역은 국경분쟁지역으로 떠오른다. 102년 신라 파사이사금 23년조에 실질곡국과 음집벌국(지금의 경상북도 안강 지역 추정) 간에 국경분쟁이 벌어진다. 신라왕은 금관국 수로왕에게 판단을 부탁했다. 이때 수로왕은 음집벌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직국의 역사가 끊어진 지 364년 만에 장수왕은 말갈 대군을 동원해 실직국성을 되찾은 것이다. 신라의 북진을 제어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같은 민족인 맥국의 고지를 다시 찾으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상정된다.

말갈은 실직국의 탈환이 최대 숙원이었던 것 같다. ‘삼국사기’ 내물이사금 40(395)년조에 “가을 8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했다. 병사를 보내 실직(悉直)의 벌판에서 그들을 크게 쳐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말갈이 실직 고지의 탈환이 숙원이었음을 알려준다.


 

동해시 송정동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제공: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1.7.28
동해시 송정동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제공: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1.7.28

◆실직국성 고지는 어디인가

실직국성 고지를 두고 삼척시와 동해시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아직은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인근 송정동에서 대단위 초기 철기 유적이 발견된 이후 동해시 쪽이 유력한 추정지로 부각되고 있다. 송정동 유적에 대한보고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송정동 철기시대 유적지는 3차 발굴로 집단주거지 전체 면적이 41만여㎡에 달하는 등 동해안 영동지역에서 조사된 철기시대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이 철기 유적지는 기원전 308~101년까지 1600여 가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정동 유적지는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 동해·삼척지역 최대 규모의 철기시대 유적으로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생활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유적이 실직국에 해당된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위치상으로 실직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당시 철기시대에서 고대국가로 이어지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라고 볼 수 있다.


◆원삼국시대 토성 답사

한국역사문화연구회와 글마루 취재반은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김상수 개발사업팀장과 윤현성 주무관의 안내를 받아 속칭 동해시에서 장안성 혹은 고녕성으로 불리는 토성 일대 유적을 답사했다.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는 나오지 않다가 ‘조선 보물 고적조사자료’에 소략하게 기록된다. ‘전국유적목록’에는 “묵호읍심곡리, 토성”이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총서’에는 “낮은 야산의 능선을 따라 둥글게 쌓은 1㎞ 정도의 토‧석혼축성이다. 장안성 또는 안토성이라 부르는데 진장을 두었다고 전하고 혹은 대진리 봉화대를 지키던 군병이 주둔했다고 전해진다. 와편이 산재돼 있고 성의 윤곽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의 목측 추정 길이는 1㎞ 이상이 되는 대단위 토성지였다. 이 성의 토축 방식은 천안 성환 사산성을 많이 닮고 있다. 원삼국시대 토성지의 양태를 지니고 있다. 석축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연석과 할석을 이용해 다져 쌓은 판축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동해 토성에서 찾아진 上(상)자 와편(빨간색 원) (제공: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1.7.28
동해 토성에서 찾아진 上(상)자 와편(빨간색 원) (제공: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1.7.28

◆무수한 고구려 와편

성 안에서는 처음 잡초가 우거져 있어 와편이나 토기의 잔해를 수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쪽 절개지를 조사하는 순간 답사반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비로 인해 황토빛 언덕에 노출되어 있는 와편 무더기들이었다.

민묘를 쓰기 위해 일부 삭토한 남쪽의 토루에서 집단적으로 찾아진 와편은 격자문, 사격자문, 승석문 등 전형적인 고구려 와편이었다. 임진강 연천 호로고루성에서 찾아진 고구려계 와편과 너무나 흡사했다.

일부는 왕도 국내성 유적과 만주 지역인 고구려성 오녀산성, 환도산성 등지에서 찾아진 평와와 같은 문양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上(상)’자명 평와(平瓦)였다. 네모진 정격자 문양의 가장자리에 구곽을 만들고 정연한 정서 예서체로 찍힌 ‘上’자는 고구려 상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토성을 점령한 고구려 집단은 상부의 군사들로 보여지는 것이다.

장수왕의 명을 받은 상부 군사들이 말갈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실지국 고성을 탈환한 것일까. 상부는 고구려 최고 귀족 계급이었다. 고구려 온달전에 평원왕이 평강공주를 온달에게 시집보내지 않고 상부고씨(上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한 기사를 통해서도 그 위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와편 가운데는 전형적인 사격자문 평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강원도 일대에서 다수 찾아지는 신라계가 아니다. 또 와편 가운데는 ‘卍(만)’자가 찍힌 흑색의 와편도 찾아졌다. ‘卍’자는 태조의 날카로운 연화문이 찍힌 아랫부분에 큰 구곽을 마련하여 찍었다. 신라 고려 시대 기와에서는 볼 수 없는 굵은 모양이다. 이는 성 안에 가람의 신축이 이뤄졌던 것임을 알려준다. 이는 실로 한국역사문화연구회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은 앞으로 고대 성터가 확인된다면 발굴 조사하여 사적공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스토리텔링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세한 내용은 글마루 8월호에 게재)

정리=백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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