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자유영혼(自由靈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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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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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서호에는 다재다능한 풍류객들의 자취가 진하다. 소만수(蘇曼殊)는 근대중국 문화계의 풍류남아이자 혁명문학단체 ‘남사(南社)’의 일원이었다. 1909년에 소주(蘇州)에서 창립된 남사는 북정(北庭) 즉 북경의 청정부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일본 고베에서 차를 팔던 부친 소걸생(蘇杰生)과 일본인 여종업원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백일도 되지 않은 그를 버리고 떠났다. 그는 자신을 ‘숨겨진 아이’였다고 자조했다.

5세에 부친을 따라 귀국했다가, 14세에 도일해 고베의 대동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가 혁명동지들을 만났으나, 발각되자 승려가 됐다. 만수는 그의 법명이다. 자유분방했던 그는 일본과 중국을 오가가다 내키면 동남아시아와 남양군도를 떠돌기도 했다. 그는 평생 교육사업, 문학, 불교서적 편찬과 번역에 매진했다. 시, 소설, 산문 등 그가 남긴 작품으로 유아자(柳亞子)가 ‘소만주전집’을 꾸몄다.

낭만주의적 기질이 농후했던 그는 신구문화 교체기의 사상적 모순과 격렬한 사회적 투쟁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특이한 가정환경과 방랑기질로 인해 복잡한 세계관을 형성했지만, 그는 민주혁명을 지지하는 진보주의자였다. 신해혁명 당시 벗들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했다.

“사나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니 칼날이 번쩍이는 가운데 두 사람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타국으로 건너왔지만, 나의 마음이 그곳으로 치닫지 않을 수가 없다. 장사는 칼을 비껴들고 격문을 읽고, 미인은 거문고를 끼고 시제를 청하니, 먼 곳에서도 그대들은 이 시대를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만수는 침구와 작별하며 동거잡시(東居雜詩)라는 시를 지었다.

유형명멸야유유(流螢明滅夜悠悠), 소녀선연불내추(素女嬋娟不耐秋).

상봉막문인간사(相逢莫問人間事), 고국상심지루류(故國傷心只淚流).

반딧불 깜박이는 밤은 너무 쓸쓸해, 아름다운 소녀에게 가을은 더욱 괴롭다네.

서로 만나도 인간사는 묻지도 못하고, 고국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린다네.

반딧불이 명멸하는 여름밤도 쓸쓸하지만, 잠자리날개처럼 하늘거리는 선녀의 옷을 입은 소녀에게 가을은 더욱 쓸쓸하다. 일상적인 대화는 묻지도 못하고, 위기에 빠진 조국을 생각하는 자신의 심정이 그러한 소녀와 같았을 것이다. 자신을 소녀에 비유한 것처럼 그에게는 굳센 투쟁심이 결핍돼 있었다. 생각은 앞섰지만, 격렬한 혁명가가 되지는 못했다. 갈등하던 그는 결국 불문으로 들어가 초탈의 길로 접어들었다. 계속되는 모순과 갈등이 반영된 그의 시에는 서늘한 고독이 묻어난다.

그의 시는 유미주의적 관점으로 감상해야 제격이다. 시승으로서 그는 아름다운 서호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젊은 시절에는 추근(秋瑾)의 묘 뒤쪽 봉림사(鳳林寺)에 머물렀다. 지금 항주반점(杭州飯店)이 있는 곳이다. 때로는 남병산(南屛山) 아래 백운암(白雲庵)에 머물기도 했다. 백운암 의주화상(意周和尙)은 이렇게 회고했다.

“소만수는 신기했다. 오갈 때마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밥을 먹으러 갔다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나기도 했다. 늘 빈털터리였지만, 암자에서 빌린 돈으로 상해의 기생집을 찾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상해에서 외국산 사탕과 담배를 가지고 왔지만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낮에는 늘어지게 자고, 저녁에는 맨발에 지팡이 하나로 소제나 백제를 떠돌다가 새벽에 돌아왔다. 시를 짓기도 했지만 그림도 그렸다. 종이뿐만 아니라 흥이 나면 아무 곳에나 그렸다. 그에게 그림을 얻으려면 종이를 놓아두기만 하면 될 정도였다. 그러나 부탁하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기인이었다.”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낙관과 시제를 남긴 것은 두 장뿐이다. 모두가 혁명가일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도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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