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음악의 성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 생애와 음악(16)
[문화칼럼] 음악의 성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 생애와 음악(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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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818년 여름, 슈베르트는 에스테르하지 공작가의 두 딸의 가정교사가 되면서 그해 여름을 영지(領地) 체레스에서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베르트는 1819년 라이바하의 사범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유랑인’ ‘제5교향곡’이 바로 그해의 작품이었다.

또한 1819년에 시인 마이어호퍼와 동거하였으며, 수년 후에 가곡집(歌曲集)을 출판하였는데 1823년 ‘유랑인의 환상곡’ ‘로자문테’ 등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덧붙이면 그해 여름에 친구의 집에서 처음 읽은 뮐러의 시에 감동하여 즉시 곡을 붙인 것이 바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소녀’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828년 31세가 된 슈베르트는 마치 자신의 짧은 일생의 겨울을 묘사하듯이 연작가곡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였으며, 더불어 최후의 가곡 14곡을 모은 것이 ‘백조의 노래’였다.

가곡의 아버지라는 명성이 있었던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 더 이상의 음악적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31세라는 젊은 연령(年齡)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과 같이 슈베르트의 불꽃 같은 삶을 간략히 소개하였는데 그는 짧은 인생에 수많은 가곡(歌曲), 기악곡(器樂曲), 교향곡(交響曲)을 작곡하였으나 특히 그의 명성을 빛나게 한 것은 가곡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슈베르트를 흔히 ‘가곡의 왕’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600곡이 넘는 많은 가곡을 작곡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고전파(古典派)에서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장르를 작곡가(作曲家)의 내면세계(內面世界)를 표출하는 예술로까지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기존에 대세를 이루었던 이탈리아 가곡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일식 가곡을 확립시켰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슈베르트가 작곡한 600곡이 넘는 가곡 중에서 특히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소녀’ ‘백조의 노래’ 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자유로운 표현력을 지니는 멜로디의 아름다움, 화성의 미묘한 변화 등 낭만주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가곡 이외에 교향곡에서는 제8번의 ‘미완성’이 유명하며, ‘제9번 교향곡’도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피아노곡에서는 ‘유랑인의 환상곡’ ‘악흥이 일 때’ 등이 알려져 있고, 실내악곡에서는 ‘죽음과 소녀’ ‘숭어’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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