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소크라테스의 변론<2>
[역사이야기] 소크라테스의 변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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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BC 399년 2월, 아테네의 시민법정에 출석한 소크라테스(BC 469∼399)는 변론을 이어간다.

그는 일흔이 넘었지만 법정에 서기는 처음이라면서, 과거의 고발인에 대해 먼저 변론하고 나서 지금 고발인에 대해 변론하겠다고 말한다.

“많은 고발인들은 오랫동안 근거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나를 무고해왔습니다. 가장 불합리한 것은 그들 가운데 한 명이 희극작가라는 것 말고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익명의 비난자들은 요즘 같으면 ‘비실명 악플 댓글부대’와 같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邪論)을 정론(正論)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남들에게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를 무고하였습니다. 배심원 여러분도 그와 비슷한 내용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직접 보았을 것입니다. 이 희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주제에 관해 허튼소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BC 445~385?)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에 작품을 많이 썼는데, 주로 전쟁과 선동 정치가와 소피스트 등을 풍자했다. 특히 그는 당대를 주름잡던 유명인사들을 연극에 등장시켜 이들의 이면(裏面)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에게 분노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BC 426년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공연됐다. 그는 당시 아테네의 집정관인 선동 정치가 클레온(?∼BC 422)을 풍자했다. 이러자 클레온은 그를 고발했고, 그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그런데 BC 424년에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사들’에서 클레온을 또 다시 풍자했다. ‘기사들’에서 클레온은 부자 데모스(민중)의 총애를 받는 노예로서 주인에게 아첨해 관리인이 된다. 그런데 데모스를 등쳐먹는 기생충 같은 클레온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농락한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보다 더 선동가인 돼지고기 장사 아고라크리토스에게 쫓겨난다.

한편 아리스토파네스는 BC 423년에 초연한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가장 못된 소피스트로 묘사했다. 그러면 ‘구름’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시골 부자 스트라프시아데스는 아들 페이디피데스의 낭비벽 때문에 많은 빚을 졌다. 그는 아들을 소크라테스 학교에 보내어 빚을 갚지 않는 방법을 배워오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들이 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티자, 그는 자신이 학생이 되고자 소크라테스를 찾아간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구름 위에서 바구니를 타고 내려온다. 스트라프시아데스는 돈은 얼마든지 내겠으니 말로 빚을 갚을 방법을 알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신학문(新學問)을 소화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소크라테스에게 보낸다.

이윽고 아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궤변으로 채권자들을 쫓아 버린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 술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은 소크라테스 학교에서 배운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때릴 수 있다”는 궤변으로 아버지를 때린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부모 구타는 중대 범죄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소크라테스 학교에 불을 지른다. 이러자 소크라테스는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제자들과 함께 탈출하면서 연극이 끝난다.

요컨대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신들을 부정하고 청년들을 타락하게 하는 궤변론자로 희화(戲畫)했고, 대중들은 소크라테스를 조롱하고 비방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를 고발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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