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이야기5-나주] 거북선의 고향, 나대용 장군을 기리다(2)
[지역사 이야기5-나주] 거북선의 고향, 나대용 장군을 기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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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나주시 문평면 소충사 앞에 있는 나대용 장군 동상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나주시 문평면 소충사 앞에 있는 나대용 장군 동상

◆ 나대용 장군의 손에서 재탄생한 거북선

장군의 생가가 있는 오륜동은 현재 논이 펼쳐져있지만, 당시에는 ‘방죽골’이라고 해서 마을 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인근에는 고막천이 있는데 지금은 수량이 적지만 당시에는 수량도 많고 제법 깊어 큰 배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나대용 장군은 바다와 배에 친숙했고, 왜구들이 영산강까지 올라오자 이들을 무찌를 수 있는 전선을 고안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장군은 어떻게 거북선을 생각했을까?

먼저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태종실록>에서 최초로 볼 수 있다. 태종이 임진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봤다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고려 말부터 조선 해안가에서 출몰하던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한 배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왜구의 수탈이 심화될 때였기에 정부는 여러 방법으로 다양한 전선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크다. 하지만 <태종실록>에서 등장했던 거북선은 한동안 볼 수 없다가 약 180년이 지난 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등장하게 됐다.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에게 찾아가 거북선 제작에 대해 건의했다. 하지만 <태종실록>에 등장하는 거북선과 나대용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 본다. 태종 때는 맹선 구조의 배가 주를 이뤘다면 나대용 장군 때에는 판옥선이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물방개 노래>를 통해 나대용 장군이 저수지에서 빙글 빙글 돌고 있는 물방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빙글 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비바람 거친 파도 걱정일랑 하지 마라

크게 쓰일 장수 나와 낙락장송 다듬어서

너 닮은 거북배 바다 오적 쓸어낸다

어허 둥둥 좋을시고 빙글 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잘도 돈다 물방개야”

복원된 거북선 (출처: 연합뉴스)
복원된 거북선 (출처: 연합뉴스)

◆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거북선

거북선의 구조적 특징은 1592년 6월 14일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계본(조선시대 중앙·지방 직계 관리가 국왕에게 담당 업무에 대해 올린 보고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신이 일찍이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건조하였습니다. 앞에는 용의 머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입으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목을 꽂았고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이라도 뚫고 들어가서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

위 내용을 봤을 때 거북선의 선두는 용의 머리로 되어 있어 대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과 선체에는 쇠목을 꽂아 왜구들이 쉽게 배 위로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것, 또 적선을 뚫고 들어가는 돌격대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돌격대용 거북선이 필요했을까? 당시 일본은 칼을 잘 쓰고 백병전에 능했다. 반면 조선은 멀리서 대포나 화살을 쏘는 전술로 응대했다. 이에 일본은 속도가 빠른 배로 가까이 다가와 직접 조선의 배에 뛰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조선은 일본이 배에 뛰어들 수 없도록 해야 했다. 나대용 장군은 일본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뚜껑을 만들어 올렸고, 뚜껑에 쇠못까지 박았기에 일본군은 쉽사리 거북선에 뛰어들지 못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다양한 전술 중에서도 거북선을 이용한 선제공격과 당파전술을 많이 보였다.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한산도대첩은 거북선의 역할이 두드러진 전투였다.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는 한산도 앞바다에 왜군을 유인한 후 학익진을 펴고 일제히 왜군을 향해 진격했다. 이때 거북선은 선봉에 서서 화력을 한꺼번에 쏘아 적선 60여척을 격파시켰다. 이후 따라온 전선들이 합세해 화살로 적을 쏘거나 불화살로 적의 배를 전소시켰다. 이러한 전술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철갑선이었던 거북선은 판옥선에 비해 일본군의 조총에 피해를 적게 입는 장점을 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일본의 수군은 거의 전멸하다 시피 했고, 육지에서 계속 지고 있던 조선은 다시금 대열을 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산도대첩에 앞서 통영 앞바다에서 있었던 당포해전에서도 거북선의 위력을 엿볼 수 있다. 왜선이 당포 선창에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앞세워 접근했다. 왜군은 조총을 쏘며 맞섰지만 거북선은 대포를 쏘면서 뱃머리로 당시 왜장이었던 카메이 코레노리가 타고 있던 왜선을 들이받았다. 이어 수군은 화포와 화살을 왜장선에 집중적으로 발사했고 왜장은 중위장 권준이 쏜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왜장인 카메이 코레노리가 사망하자 왜군은 전의를 상실한 채 도망쳤고, 이 전투로 조선은 왜선 21척 모두 격침시키는 결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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