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이야기4-진도] 삼별초, 또 하나의 고려를 세우다(3)
[지역사 이야기4-진도] 삼별초, 또 하나의 고려를 세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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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 홍보관 앞에 있는 삼별초 항쟁을 기록한 홍보석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 홍보관 앞에 있는 삼별초 항쟁을 기록한 홍보석

강화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까지 옮겨가며 몽고에 항쟁한 삼별초항쟁은 약 3년에 걸쳐 일어났다. 결국은 여몽연합군의 수에 밀려 쓰러져버린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자주적인 고려였다.

삼별초항쟁이 처음 알려진 것은 ‘삼별초의 난’이었다. 삼별초라는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의 항쟁을 살펴보면 그저 무신정권의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삼별초만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피폐해졌던 백성들 또한 나라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삼별초를 지지하는 민중적인 성격까지 나타난다.

결국 삼별초항쟁은 단순히 무신정권의 연장선이 아니라 나라를 핍박하고 있는 몽골에 대한 백성들의 대몽 의지가 나타남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려의 백성들은 원에 의지하기만 했던 당시의 개경 정부를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자주적인 나라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느껴진다. 원종의 개경정부는 ‘반란’이라고 하는 자기 나라의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이며 몽골의 힘을 빌려야 했고, 이는 결국 왕의 자리마저 몽골(원나라)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앉을 수 있는 나라로 전락해버렸다.

자주적인 나라를 위해 스러져가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던 그들이었지만 칼을 들고 싸웠던 진도의 현장에서, 이제는 터만 남아버린 용장산성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자주적인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가.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용장산성 터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용장산성 터

“아~ 진도는 또 하나의 고려였네
이 땅을 지켜온 이름 모를 사람들
아직도 들리는 저들의 함성
동백꽃 피고 해당화 피는
살기 좋은 옥토강산
자자손손 번창하여 천년만년 살고지고
자자손손 번창하여 천년만년 살고지고
용맹한 군사들이여 늠름한 군사들이여
아름다운 금수강산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살리세
기름진 이 땅과 저 푸른 바다와
사시사철 변화하는 산과 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 나라를 지키자
이 땅에 동이 튼다 새날이 온다
오랑캐를 물리치고 새 고려를 세우자
낫 들고 일어나세 호미 들고 일어나세
우리 백성 힘을 모아 새 나라를 만드세
아~ 진도는 또 하나 고려였네”

-국악 오페라, 구국의 고려전사 삼별초 중 백성과 장군들의 노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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