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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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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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는 어떤 일이 전개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 대상자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 기억에서 종소리가 선연히 남아 있는 건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종’ 동요와 수업 시작과 끝남을 알려주는 종소리로 인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어린이들이 수시로 불렀던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노래와, 지금은 차임벨로 바뀌었지만 수업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땡땡’하고 울리든 ‘댕그랑댕그랑’하고 울리든 우리사회에서는 종(鐘) 또는 종소리에 대한 일반화된 관용어들이 많다. 쉽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경종을 울리다’는 ‘잘못이나 위험을 미리 경계해 주의를 환기시키다’는 의미이고, ‘조종을 울리다’는 것은 본래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종을 울린다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죽음으로 향해 가는 처지에 있거나 어떤 것의 종말을 이르는’ 뜻이니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렸다’는 게 이런 사용례이다.

그런 의미를 함유하고 있으니 동서고금에서 종소리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다. 유명한 모더니즘 계열의 박남수(1918~1994) 시인의 ‘종소리’는 ‘칠흑의 감방에서’의 긴긴 세월은 끝나고 ‘하나의 소리가 되어’ 하늘 꼭대기에서 ‘뇌성이 되어’ 퍼져 나갈 때에 비로소 종은 그 존재의 참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종소리를 통해 ‘자유의 참의미’를 노래하기도 했다. 즉 ‘종소리 = 자유(自由)’ 등식이었으니, 같은 모더니즘 시인인 김광균의 ‘외인촌’ 시 끝부분에 나오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鐘)소리’ 내용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종소리라 하니 떠오르는 외국 작가가 있으니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다.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바 있는 헤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으로 유명하지만 1940년에 출판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소설로 유명세를 탔다. 그 소설 내용에서는 1937년 일어난 스페인 내전의 참혹상을 그리면서 사랑이야기를 곁들였지만 종국적으로는 ‘개인과 인류와의 관계, 이 지상의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의 위기와 전세계의 자유와의 관계, 개인의 무력함과 연대책임의 중요성 등을 시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종이 울리는 것은 정치 권력자나 사회지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에 목마른 바로 ‘당신’을 위해서라는 일깨움이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 상황과도 무관치가 않다.

올해 여름은 처참하고 답답했다. 지난봄부터 들이닥친 코로나19 여파로 국민이 물질적․정서적으로 고생하는데다가 장마 폭우와 잇따른 태풍이 겹쳐 피해가 크다. 그 거듭되는 고충 속에서 정치라도 진전이 있다면 위안받겠는데, 지금까지 다수 의석을 앞세운 여당의 폭주기관차 몰이로 국민들은 피로가 쌓였다.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로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 꿈은 산산조각 났고, 법무장관 아들의 황제휴가(?)로 불공정함이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15총선 이후 지금까지 3차례 추경을 한데다가 또 4차 추경으로 재난지원금을 지원한다니 ‘빼먹는 곶감’ 맛에 미래세대의 엄청난 부담은 뒷전이다. 말끝마다 적폐청산이고 검찰개혁인바, ‘정권 유지에 공권력을 행사하는 게 아닌가’ 국민들이 의심할 정도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아빠찬스에 이어진 추미애 법무장관의 엄마찬스로 부정적 여론이 태풍급이다. ‘인사가 곧 만사’라는 보편적 원칙을 무시하고 보권(保權)을 위한 보은인사로 막장인사를 보였던 법무부의 인사, ‘검찰개혁’의 탈을 쓰고 휘두르는 막무가내 검법은 검찰신뢰를 먹칠한 가운데 추 장관의 엄마찬스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사회적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정의, 공정, 적법이라는 거짓 방패로 아들의 휴가 논란을 정당화시키는데 골몰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마따나 한 때 고공행진했던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반 토막이 났고, 민주당 지지도가 예전과는 다르다. 총선 이후 5개월간 여당 횡포의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국민들의 반응. 얼마 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2022년 대선에서 ‘현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 당선(41%)’보다 ‘현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 당선(45%)’을 선택한 응답자가 더 많은 현상이 나오기도 했다. 다수의석의 힘을 믿고 독선했던 여당에게 종소리로 분명한 경종을 울리고 있음에도 그들은 아직도 국민 눈을 가리고 덮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배운 ‘학교종’ 동요에서 비롯된 종소리의 기억은 알리고 깨우치는 데 있다. 그로 인해 종과 관련되거나 종소리에서 파생된 우리사회의 자유와 사회연대의 중요성은 민심 속에서 분수처럼 푸른 종소리로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초는 바보가 아니다. 더 이상 권력의 집단 사유화에 의해 민주주의의 조종이 울려서는 안 된다. 모든 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헤밍웨이가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대작의 소설 제목을 떠올려봐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를 곱씹어보며 우리사회를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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