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세계문화기행] 세계문화기행 러시아편 (1)
[100년 전 세계문화기행] 세계문화기행 러시아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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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1900). 성 바실리 대성당과 그 주변이 개화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이 주는 매력이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1900). 성 바실리 대성당과 그 주변이 개화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이 주는 매력이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이번에는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러시아를 시작으로 12개국의 19세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 그 과거로의 여행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100년 전 세계문화기행’의 첫 번째 주자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일본과 중국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건양 1)년 2월 11일부터 약 1년 간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이 그중 하나다. 당시 고종이 머물렀던 러시아공사관을 설계한 이도 러시아인이다. 황실건축가로 잘 알려진 세레진 사바틴(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 1860~1921)은 러시아인으로 조선 수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서울 정동의 (구)러시아공사관뿐 아니라 1896년 서재필의 독립협회가 발주한 ‘독립문’도 설계했다.

근래 들어서는 ‘남-북-러 육상 연결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민간 및 정부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된 바 있지만 지난 2018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 (유리원판, 1890). 모스크바의 상징인 성 바실리 대성당을 찍은 컬러 유리원판이다. 유리원판 필름에 색을 입혀 만든 것으로 상당한 기술과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 (유리원판, 1890). 모스크바의 상징인 성 바실리 대성당을 찍은 컬러 유리원판이다. 유리원판 필름에 색을 입혀 만든 것으로 상당한 기술과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무엇보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두 번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인 1884년 조선과 제정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통상조약과 1990년 9월 30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한국과 소련 양국의 외무장관 사이에서 이루어진 한소수교(韓蘇修交)가 그것이다. 한소수교는 1990년 6월 4일 우리나라의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소수교의 원칙을 합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한편 1884년 체결된 ‘조러수호통상조약’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1904년 파기됐으며, 이후 양국은 냉전을 거치면서 거의 교류가 없었다. 적대적이던 한소관계는 1970년대 동서진영의 데탕트가 시작되면서 상호입국허용,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 문화교류 등으로 점차 호전됐고, 1990년 한국과 러시아 간 두 번째 수교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도 러시아 사진작가가 찍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최초로 카메라에 찍힌 주인공들은 이항억을 비롯한 조선의 청나라 방문 사절단(조선 연행사, 1863년 음력 1월)으로 사진 촬영 장소는 중국 베이징 러시아공사관이다. 관련 사진은 현재 런던선교회 측에서 런던대학교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회(SOAS)에 위탁 보관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 존재가 1999년에 알려졌으며, 2008년에는 사진 6장 모두가 최초로 공개됐다.

이번에 사진을 제공한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지난 2010년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호암아트홀에서 진행된 사진전에도 희귀 유리원판과 사진 등을 제공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이웃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평생을 사진(영상)자료를 모아온 정성길 명예관장이 있었기에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사진전과 같이 중요한 순간 도움의 손길도 펼칠 수 있었다.

한편 유리원판 필름 중에서도 컬러를 입힌 유리원판 필름은 그 제작기법이 거의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유리원판 기술이 소멸됐을 뿐 아니라 최소 100여 년 전의 역사와 풍속 등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이 평가된다. 유리원판 필름은 환등기를 통해 보도록 제작됐으며, 선교사업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됐다.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187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187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7.3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 대성당(1870)

1555년 건축을 시작해 1560년에 완공된 성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건축양식은 러시아 정교 양식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인 이반 4세(폭군 이반)가 카잔을 정벌, 러시아가 황금군단(Golden Horde)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반 4세의 명으로 모스크바의 중앙 시장터에 세워졌다. 상트 바실리 블라제누이란 ‘축복받은 성 바실리’라는 뜻으로 이반 4세의 잔혹함을 비판해 유명해진 성 바실리를 기념하고 있다.

중앙의 벽기둥 구조를 중심으로 여덟 개의 예배당을 대칭 배치했으며, 이는 마치 팔각형의 별 모양을 연상시킨다. 기본 구조는 그대로이지만 1670년대 러시아 민속 자수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색깔로 도색했다. 이후 성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전형처럼 되었다. 또한 성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명실상부 러시아의 가장 독특한 랜드마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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