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호사 인터뷰] 코로나 사투 속 ‘피·땀·눈물’ 사연… “응원, 큰 힘 됐어요”
[대구간호사 인터뷰] 코로나 사투 속 ‘피·땀·눈물’ 사연… “응원, 큰 힘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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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병상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김지선 간호사. (제공: 김지선 간호사) ⓒ천지일보 2020.6.22
코로나19 감염병상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김지선 간호사. (제공: 김지선 간호사) ⓒ천지일보 2020.6.22

김지선 영남대학교병원 코로나19 감염병상 간호사 인터뷰

“접촉 줄여야하나, 불안해하는 환자 모른척 할 수 없었다”

“환자, 완쾌 후 퇴원까지 의료진 노고없다면 불가능한 일”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순망치한’의 뜻을 직역하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뜻합니다. 간호사는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같은 간호사들끼리도 서로 도우며 일하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생각이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강해졌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난 1월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후 어언 5개월이 훌쩍 지났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대구·경북 지역에는 병상과 의료인력이 모자라는 상태까지 이르게 됐다.

여기 코로나19 감염병상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김지선 간호사의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지난 2월 24~25일 2일간 대구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선정된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했다. 이어 2월 26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본 근무지인 영남대병원 감염병상에서 일했다.

그는 “확진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돌보며 완쾌해서 퇴원할 때까지 의료진들의 수고와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감염병상에서 처음 근무했을 때 심정은?

처음에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었고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저도 간호사이기 전에 사람인지라 ‘어쩌다 내가 이 위험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간호하게 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제가 가지 않으면 또 다른 제 동료가 저와 같은 마음의 부담을 갖고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꼭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족 중 어머니도 다른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셔서 혹시나 제가 감염되면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피해가 갈 수 있었기에, 어머니는 처음엔 저에게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말라고 말리셨다.

하지만 나중엔 “이왕 결정한 거 몸 잘 챙기면서 열심히 근무하고 와. 네가 제일 필요하니까 널 부른거야”라고 응원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셨다.

- 현장에서 본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은?

정확한 발병 기전도, 확실한 치료제나 치료 방법도 알려지지 않은 데다 전염력까지 강한 질병을 실제로 접하니 아무리 수많은 환자를 현장에서 봐 왔던 의료진들이라도 무섭고 두려움을 느낄 법한 상황이었다.

특히나 이번 코로나19의 특이한 점이 다른 질병과 다르게 무증상 감염자가 있단 점이었다. 이 분야와 관련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도 이렇게 우왕좌왕하는데 환자들은 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컸다.

실제 근무 시에는 의료진 보호도 중요하기에 ‘환자 접촉을 최소화하라’라는 지침이 있었지만, 근무 중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는 환자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또 병원 내부에 유일하게 상주하고 있는 의료진이 간호사이기에 모든 방호복을 갖춰 입고 숨도 쉬기 불편한 상황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환자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근무하면서 갑자기 환자가 급격히 증가해 사전 교육을 받을 시간조차 없어 질병관리본부 유튜브에서 올려준 레벨D 방호복을 입는 영상을 찾아 독학하고 현장에 먼저 도착해 동료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물품 조달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어 애를 먹기도 했다. ‘고글과 페이스 쉴드 등은 모자랄 수 있어 아껴쓰자’는 말에 소독약으로 닦아서 사용했다. 나중엔 보호복 덧신이 모자라 비닐봉지와 테이프로 1차로 감싼 후 수술실에 보호자가 들어갈 때만 잠깐 덮어쓰는 덧신을 끼워 다시 테이핑해 임시 덧신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환자들이 의료진 지시에 잘 따라줘야 치료가 수월한데 처음엔 환자 통제가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 알 수 없는 질병에 감염돼 언제 나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확진자들이 제일 많이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은 예상 그 이상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등을 믿고 의료진을 불신하는 경우가 있어 애를 먹었다.

감염병상에서 근무하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루는 근무중에 보호자들이 반입 금지품목인 담배와 영양제 등을 몰래 속옷이나 수건 안에 감싸서 반입하려다 물품 확인 과정에서 적발돼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반입 금지 물품을 보호자에게 돌려보내며 그에 대한 사유를 친절히 알려드리면 머쓱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역정을 내며 “환자가 달라는데 이런 것도 못해줘요?”라고 큰소리로 항의하는 난처한 상황도 있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는?

부부인데 두 분 다 확진 판정을 받아 같은 병동에 입원해있던 분들이 제 기억속에 오래 남는다. 남녀가 병실을 나눠 쓰기에 각각 다른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출입이 엄금돼 있어 서로의 소식을 전화나 의료진의 이야기로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아내분이 경미한 치매 증세가 있어 치료 경과 등에 대해 설명을 드려도 잘 이해를 하지 못 해 남편분이 많이 걱정하셨던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저희 간호사들이 중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기도 하고 영상 통화를 연결시켜 드리기도 하는 등 일종의 ‘사랑의 비둘기’ 역할을 했다. 남편분이 퇴원도 아내분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해 두 분 다 음성 두 번이 나오길 모든 의료진이 간절히 바랐던 기억이 난다.

- 고군분투 중인 의료진에게 하고픈 말은?

우선 대구·경북 지역에 의료지원을 나오셨던 의료진 여러분께 정말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다니도록 저부터 모범을 보이고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우리 동료들을 위해 함께 힘써달라고 열심히 알리겠다.

실제로 근무해 본 입장에서 ‘힘내세요’라는 말 한 마디만으로 힘을 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 말 한 마디가 가진 힘이 참 크긴 커서 응원의 한 마디가 참 중요하단 생각도 들었다.

응원만으로 끝낼 게 아니라 모두 다 코로나19 전파를 막는데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영남대병원 401병동. (제공: 김지선 간호사) ⓒ천지일보 2020.6.22
영남대병원 401병동. (제공: 김지선 간호사) ⓒ천지일보 20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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