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7)
[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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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땔감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4
땔감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4

땔감장수

구한말 땔감을 장에 팔러 가는 땔감장수의 모습이다. 황소가 힘이 좋다고는 하지만 정말 많은 양의 땔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나무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4
나무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4

나무장수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파는 사람을 일컬어 나무장수라고 한다. 아직 연탄이 보급되기 전인 6.25전쟁 직후까지만 해도 나무장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로 밥을 짓거나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사용했는데, 땔감으로 사용된 나무로는 솔잎만을 모아 두부모 자르듯 반듯하게 자른 솔가리, 솔가지, 통나무를 쪼갠 장작, 말라 죽은 가지를 모은 삭정이 등이 있었다. 사진은 땔감을 한가득 실은 황소와 나무장수가 함께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이다. 사진을 보면 도로가 포장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도로가 포장된 곳은 무악재와 서대문, 서소문 입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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