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5)
[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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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물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22
물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22

물장수

물장수는 아침, 저녁으로 각 가정에 물을 배달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당시 서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였다. 1910년대 서울 시내의 우물 수는 총 1만 1410개였지만 이 중 9911개가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당했다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장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수질이 좋기로 소문난 우물(정동제일교회에 있던 우물도 그중 하나)은 인기가 좋았는데, 수질이 좋은 곳의 물은 주로 부유층들이 거래했다.

 

물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22
물장수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22

물장수

선교사 사택 앞에서 찍은 물통을 들고 찍은 사진으로 물장수가 들고 있는 물통은 서양식 오일통이다. 물장수는 약 30리터의 물을 어깨에 지고 다녔다.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이었지만 당시에는 인기 직업 중 하나였다. 물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우물과 물자리와 급수 노동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했다. 물장수에게는 자신이 물을 판매하는 담당 구역(물자리)이 있었고, 이 자리의 권리를 급수권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물을 배달하지 않고 물지게꾼을 고용해 물자리세만 받는 물장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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