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떠나볼까] ‘평화와 통일의 섬’ 시간이 멈춘 강화 교동도
[잠시 떠나볼까] ‘평화와 통일의 섬’ 시간이 멈춘 강화 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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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대룡시장, 교동망향대, 연산군 유배지, 교동읍성, 읍내리 비석군, 교동향교의 모습.(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대룡시장, 교동망향대, 연산군 유배지, 교동읍성, 읍내리 비석군, 교동향교의 모습.(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천지일보 2020.4.30

‘타임머신 타고 70년대로’ 추억의 시간여행 대룡시장
실향민들, 황해도 연백시장 본떠 만들어
‘8백만 실향민 이산의 아픔 위로’ 교동 망향대
망향대, 북녘땅 황해도 연안군 손에 잡힐 듯
‘흥청망청 연산군’ 왕족들의 유배지
한국 ‘최초의 향교’ 교동향교‧읍내리 비석군‧교동읍성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28년 전으로 기억된다. 친구의 누이가 시집가서 살던 교동도를 처음 방문했었다. 그 당시 교동은 강화도에서 카페리를 타고 입도해야 했다. 교동에 가려면 일체의 소지품 검사는 물론, 차량 트렁크까지 세세하게 검문검색을 받았다. 교동에 친인척이 없으면 방문조차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약 6년 전 강화와 교동을 잇는 교동대교가 개통되고, 섬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주말이면 안보관광을 위해 교동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교동은 북한과 접경지역으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에 있는 섬 속의 섬이다. 교동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화도를 거쳐야 하고 신분증도 챙겨야 한다. 

교동도는 북한과의 거리가 2.6km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일궜다. 2014년 교동대교 개통 이전까지 오랜 시간 소외된 도서지역으로 남아 시간이 멈춘 섬으로 불리었다.

다리가 놓이고 지자체와 중앙정부, 민간기업이 협력해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 프로젝트’를 추진한 결과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하는 교동은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초입의 교동상회. 붓으로 쓴 간판과 전보전화 취급소 안내 문구가 눈길을 끈다.ⓒ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초입의 교동상회. 붓으로 쓴 간판과 전보전화 취급소 안내 문구가 눈길을 끈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의 청춘부라보 떡집. 가게에서는 이북식 강아지 떡을 판매한다. 강아지떡은 일제강점기 이북 곡창지대 연백에서 만들어 먹던 떡이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의 청춘부라보 떡집. 가게에서는 이북식 강아지 떡을 판매한다. 강아지 떡은 일제강점기 이북 곡창지대 연백에서 만들어 먹던 떡이다. ⓒ천지일보 2020.4.30

◆ ‘타임머신 타고 1970년대로’ 추억의 시간여행 대룡시장

교동에서 여행객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은 대룡시장으로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시장은 교동대교가 개통되고, 1970년대 만들어진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6.25전쟁 당시 이북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피난 온 실향민 집성촌이 형성되면서 시장이 만들어졌다.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실향민들이 황해도 연백군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1970~1980년대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착각에 빠진다. 이발소, 약방, 신발가게 등 많은 상점들이 50년 전 모습으로 영업하고 있다. 나들목식당과 거북당도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대룡시장에 가면 제비집과 제비가족, 제비를 보호하자는 글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고향 연백에서 찾아오는 제비에 대한 실향민들의 특별한 애정 때문이다.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내 교동극장. 현재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방의 모습도 보인다.ⓒ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내 교동극장. 현재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방의 모습도 보인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내 정육점. 주인이 주민에게 판매할 돼지고기를 썰고 있다.ⓒ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내 정육점. 주인이 주민에게 판매할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4.30

대룡시장은 50여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을 만든 실향민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 ‘8백만 실향민 이산의 아픔을 위로’ 교동 망향대

교동 망향대는 한국전쟁 중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을 떠나온 피난민들이 만들었다. 이들은 고향의 부모와 형제‧친지와 친구 등 고향산천을 잊지 못하는 심정을 담아 지석리에 망향대를 지었다.

망향대에 오르면 북녘땅 황해도 연안군 마을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망향대와 연안군까지 직선거리가 약 3km 정도로 아주 가깝다. 설치된 망원경을 이용하면 북한 동포의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연안읍의 진산인 비종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백평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천지일보 강화도=신창원 기자]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등 두문불출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는 30일 오후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 마을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 망향대에서 바라본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 마을 모습. 이날 안개가 많아 시야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북녘 주민들이 자전거 타고 이동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강화도=신창원 기자]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등 두문불출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는 30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교동망향대에서 시민들이 망원경으로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 마을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망향대에서 시민들이 망원경으로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 마을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0.4.30

망원경을 통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북한 동포와 들녘에서 농사짓는 주민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와! 북한 사람이다’라며 신기해 한다. 망향대 한편에는 북한 주민들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돼 있다. 

분단 이전에 교동도는 황해도 연백군과 뱃길로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실향민들은 그리운 고향 북녘을 바라보며 매년 이곳 망향대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강화군에서는 8백만 실향민들의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고, 고향산천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심기위해 망향대를 관광코스로 지정했다. 

◆ ‘흥청망청 연산군’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은 역사적 유배지로도 유명했다. 고려 때 희종이 최충헌에 의해 폐위돼 이곳으로 귀양 왔고, 중종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광해군의 형 임해군, 동생 능창대군이 교동으로 귀양을 왔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왕족들이 귀양을 오게 된다. 

연산군은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인 ‘위리안치’에 처해져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된다. 연산군 시절 나온 말이 ‘흥청망국’이라는 말인데 이는 곧 ‘흥청망청’의 어원이 된다.

다리를 뻗고 눕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초가집 안 초라한 밥상 앞에 앉은 연산군. 당시 그의 수발을 들던 시녀들이 안타깝고 안쓰럽게 여겨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연산군 유배지 모습,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연산군 유배지 모습.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연산군 유배지 모습, ⓒ천지일보 2020.5.1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연산군 유배지 모습, 한 시녀는 앉아서 울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천지일보 2020.4.30

초가집 둘레에는 탱자나무가 심겨있다. 죄인이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유배 당시 나인 4명, 내시 2명, 반감 1명에 당상관 1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연산군을 호송했다. 당시를 재현한 호송함거 모형도 설치돼 있다.

현재의 시설물은 연산군이 유배돼 안치 기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위리안치소를 재현한 것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시대적 상황을 이해시키고 역사를 알리고 있다. 

◆ 한국 최초의 향교 교동향교‧읍내리 비석군‧교동읍성

우리나라 최초 향교이면서 처음으로 공자상을 모신 곳이 교동향교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문선공 안유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곳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향교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노동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향교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노동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4.30

화개산 자락에 위치한 교동향교는 여백이 아름다운 한 점 수묵화와 닮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이고, 인천 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됐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돌담이 정답고 산중턱에 자리해 건물마다 고저 차이가 분명하다. 가장 높은 지점에 서면, 그 옛날 유생들의 경 읽는 소리가 바다 저 멀리까지 퍼져 나갈 듯 풍경이 환하게 펼쳐져 발품이 아깝지 않다. 

교동향교가 위치한 화개산은 예로부터 물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아 홍수가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화개산에서 산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교동향교 아래에 있는 읍내리 비석군도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선정을 펼친 교동지역의 목민관, 수군절도사, 삼도통어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영세불망비 등 총 40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들은 교동면 관내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1년도부터 강화군 및 교동유림에서 이곳으로 이전해 관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읍내리 비석군 모습. ⓒ천지일보 2020.5.1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읍내리 비석군 모습. ⓒ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읍성 모습.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남문) 부분만 남아 과거의 규모를 추측해 볼 뿐이다. 예전에 태풍에 무너졌다고 한다.ⓒ천지일보 2020.4.30
[천지일보 교동도=신창원 기자] 교동읍성 모습.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남문) 부분만 남아 과거의 규모를 추측해 볼 뿐이다. 예전에 태풍에 무너졌다고 한다. ⓒ천지일보 2020.4.30

교동도를 지켜줬던 교동읍성은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한 성곽이다. 성은 인조 7년(1629년)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축조한 것으로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었다. 성의 둘레는 870m이고 높이 약 6m로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남문) 부분만 남아 과거의 규모를 추측해 볼 뿐이다.

‘실향민들의 터전’ 대룡시장, ‘손에 잡힐 듯’ 북녘땅이 보이는 망향 전망대, ‘흥청망청 연산군’ 왕족들의 유배지, 한국 최초의 향교 교동항교‧읍내리 비석군‧교동읍성 등 6.25가 남긴 상흔과 역사의 현장을 느끼는 교동도 여행이 뜻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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