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3)
[사진으로 보는 역사] 운반, 몸이 곧 도구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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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나룻배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1
나룻배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1

나룻배

마포나루나 토진나루, 강창나루 등 당시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많은 나룻배들이 필요했다.

당시 나룻배는 사람뿐 아니라 소와 같은 가축도 함께 운반하는 수단으로 널리 사용됐다.

특히 낙동강 700리 중 상주 낙동강에는 크고 작은 나루가 12개나 존재했다고 하니 각 나루마다 운행되던 나룻배의 수도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마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1
가마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5.1

가마

조선시대 가마는 그 종류도 다양했지만 사람을 태워 이동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그 맥을 같이 한다. 사진 속에 보이는 가마는 여인들이 타던 것으로 벽면에 동그랗게 창을 뚫고 모시를 덧대어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그 당시 가마는 탄 사람들에게는 편한 운송 수단이었을지 모르나 가마꾼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가마를 신분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불평등의 상징이기도 했다.

1832년 정약용은 가마꾼의 어려움을 견여탄(肩輿歎)이란 장문의 시에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케 해주니, 하는 일 당나귀와 다를 바 하나 없네.”

한편 가마꾼들은 주로 앞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 서고, 뒤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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