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코로나사태 이전 세상에 미련 두지 말고, 이후 세상에 귀 기울일 때
[천지일보 시론] 코로나사태 이전 세상에 미련 두지 말고, 이후 세상에 귀 기울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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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으로 하 수상(殊常: 몹시 괴이하고 뒤숭숭함)하다. 추측은 무성하지만 알 수 없는 질병이 팬데믹(세계적 유행)화 되며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이기적 문명을 정지시키고 지구촌의 모든 질서를 한순간에 멈춰 세워놓고 있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라는 시조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다. 인생을 자랑하지 말라는 글귀도 스쳐지나간다.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하늘은 우리에게 생생하게 목도하게 하며, 우리는 언젠가부터 생명의 존엄성마저 상실해지고 또 무너져 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무주의에 길들여져 가고 있으며, 한편으론 섭리 앞에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겸손하게 한다.

지구촌은 어쩌면 앞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믿기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극복하며 미래를 슬기롭게 설계해 나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관성으로 이어지는 욕심과 교만과 위선과 증오와 거짓을 멈추지 않는 부류가 있다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를 강하게 주문한다.

이제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눠질 것이 불 보듯 훤해 보인다.

지금까지 목적 없이 향방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며 삶이라면 이제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며 이전과 이후를 살피고 진단하며 각자와 사회 공동체와 국가와 지구촌은 정비하고 정리하라는 하늘의 요구이자 명령임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인문학(人文學)을 말하곤 한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그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인문학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고 싶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이는 그 학문을 통해 각자에게 ‘자아(自我)의 발견’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언급했듯이 우리 각자는 자신의 정체성도 모른 체 그저 살다가 가야 하는 마치 저 미물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코로나사태 이후 한 매체에 따르면 미국에서 성경 판매비율이 과거에 비해 60%가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가 나온 지 벌써 한 달 가량 지났으니 지금은 판매량이 더 급증하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지구촌 전반의 현상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예측도 가능하다. 금번 코로나 질병을 통해 하늘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현상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향방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과적한 기차를 큰 굉음과 함께 급정거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 필자만의 치우친 생각일까.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고, 이 세상에 만연한 생로병사와 흥망성쇠가 도대체 어디서 기인된 것인지를 알고자 조물주를 찾아 나섰고, 보리수 아래서 깨닫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석가,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삶을 멈추고 두타(頭陀)의 길 즉, 깨달음의 고행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불교 창시자 석가를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즉, 인문학이라 했으니,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종교였음을 깨닫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인문학의 범주에는 수많은 학문이 있겠지만,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적 헛된 속임수에 불과한 세상 철학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간과해선 안 될 진실은 종교가 있다할지라도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종교성(영성)을 충족해 주지도 못할뿐더러 이미 종교는 종교 말년을 맞아 부패하고 타락해 세속화 돼 버렸으니 인생에겐 아무 쓸모없는 세상 얘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조선 명종 때 당파싸움과 탐관오리가 들끓던 시절, 백성들에겐 암흑과도 같이 아무런 희망이 없던 시절, 하늘은 당시 유학자이며 천문학자이며 예언가였던 격암 남사고를 통해 장래 있게 될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줬으니 바로 ‘격암유록(格菴遺錄)’이다.

그 중 오늘의 현실을 잘 예언해 놨으니 “말세골염 유불선 무도문장 무용야(末世汨染 儒佛仙 無道文章 無用也)”다. 종교의 말세가 와 세상은 모든 생각이 허무한 생각에 염색되고 자기 생각에 골몰함으로 유불선이라는 종교가 있고 그 도(道)가 있어도 진리를 깨달아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 없으니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을 미리 알려준 것이다.

그렇다. 말세(末世)라 했으니, 말세가 있다면 창세(創世)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이치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말세는 가는 세상이니 가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은, 옛 것은 낡아지는 것이니 낡아지는 것은 쇠하여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코로나사태 이후에 펼쳐 질 새로운 세상에 주목하면서 하늘에 귀 기울여 천문(天門)을 열고 오는 세상을 분별해 참여하므로 새 세상 새 역사를 함께 써내려 가보자.

하늘이 내리는 경고를 듣지 않고 고집부릴 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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