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로 보는 인류史(14)] 일제 강점기의 화폐
[화폐로 보는 인류史(14)] 일제 강점기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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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제철 풍산 화동양행 대표

◆조선은행권 금권(金券) 발행

1910년(융희 4)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구 한국은행을 대신하여 1911년 조선은행을 설립하고 일본 내각인쇄국의 은행권 제조가 여의치 못하자 조선총독부 인쇄국에 은행권 제조를 의뢰하여 1914년에 비로소 조선은행권인 100원권을 발행하였는데 은행명, 근거법규, 태환문안만 다를 뿐 대부분의 모양이 일본은행 100엔 태환은행권과 같았는데 이는 구 100엔권 원판을 수정하여 조선은행권 원판으로 재활용한 결과였다. 100원권 앞면 오른쪽에 있는 인물상도 일본은행 구 100엔권과 같은 대흑천상이 사용되었고 앞·뒷면에는 금이나 일본은행 태환권으로 교환해 준다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었다.

금권(제공: 풍산화동양행)ⓒ천지일보 2020.3.25
금권(제공: 풍산화동양행)ⓒ천지일보 2020.3.25

화폐 단위 또한 구 한국은행에서 사용되던 원(圜)이 사라지고 일본의 화폐단위와 같은 한자명인 원(圓)이 인쇄되기 시작했다.

100원권이 발행된 이듬해인 1915년 1원, 5원, 10원권이 발행됨으로써 구 한국은행권과 일본 제일은행권의 회수가 촉진되었다. 1원, 5원 10원권의 앞면에는 수노인상이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권종에는 조선총독부 문장이었던 오동장과 조선은행 문장이 도안에 사용되었다.

당초 조선은행권은 주로 조선총독부 직영공장에서 제조되었으나, 1924년 이후 일본 내각인쇄국에서 제조되기도 하였는데 은행권 앞면 아래에 전자는 ‘조선총독부 인쇄’ 후자는 ‘대일본제국 정부 내각인쇄국 제조’로 기재되어 있으며, 기호는 괄호모양도 전자는 ‘< >’, 후자는 ‘{ }’로 표시하였으며 기번호의 아라비아 숫자 자형도 상이하였다.

改(개)권 은행권 1원(무번호)  (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改(개)권 은행권 1원(무번호) (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改(개)권 은행권 5원(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改(개)권 은행권 5원(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改(개)은행권, 甲(갑)은행권

1932년 1월 조선은행은 일본 내각인쇄국에서 제조한 개(改) 1원권을 발행하였으며 그해 6월에는 개(改)10원권을 발행하였는데, 개(改) 1원권에서 삭제되었던 오동장이 다시 사용되었고 뒷면에는 조선은행의 건물 전경이 사용되었다. 1935년 6월에는 일본 내각인쇄국이 제조한 개(改)5원권이 발행되었는데 조선은행휘장이 더 크게 삽입되고 영문 지불 약속 문언이 삭제되었다.

1938년 12월 개(改)100원권이 발행 되었는데, 앞면에는 인물상을 기존의 대흑천상을 수노인상으로 대체하고 오동문장을 배치하였다.

이후 발행된 조선은행권은 전쟁 중 물자 부족 등으로 가능한 인쇄를 간소화하고 품질도 낮춤에 따라 전반적으로 조잡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44년 2월 갑(甲)10원권과 갑(甲)5원권이 1월에 개(改)1원권(무번호권)이 발행되고, 11월에는 갑(甲)100원권 및 갑(甲)10원권(무번호권)이 발행되어 한 해 동안 5권 종이 신규 발행되었으며, 1945년 2월에는 갑(甲)5, 10원권과 중일전쟁 이전에 발행된 개(改)1,5,10원권을 비교하여 보면, 갑(甲)권은 뒷면인쇄 방법이 요판(凹版)인쇄에서 철판(凸版)인쇄로 변경되었고, 색상은 물론 전반적으로 품질이 나빠졌다.

1916년 소액지급어음 (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1916년 소액지급어음 (제공: 풍산화동양행) ⓒ천지일보 2020.3.25
1916년 소액지급어음 (제공: 풍산화동양행)ⓒ천지일보 2020.3.25
1916년 소액지급어음 (제공: 풍산화동양행)ⓒ천지일보 2020.3.25

◆소액지급어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에서의 보조화폐 부족을 보충할 목적으로 조선은행은 만주에서만 유통이 가능한 소액지급어음의 발행을 의뢰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1916년 6월 그 발행을 인가하였다. 소액지급어음의 종류는 50전, 20전 및 10전으로 하고 조선은행의 만주지역 지점에 한하여 발행하는 것으로 하였다.

한편 당시 국내에서도 보조화폐 부족현상이 나타나자 1919년 조선은행은 이를 완화하기 위하여 50전, 20전 및 10전 3종의 일괄출급식 지급어음을 발행하였으나 그 후 보조화폐의 공급이 원활해져 1928년 3월 이후 소액지급 어음을 새로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발행 잔액에 대해서는 동액의 보조화폐로 교환하도록 하였다.

이후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소액화폐가 대량으로 필요해지고, 조선은행권이 군용화폐로 지정됨에 따라 일본 대장성의 명에 의거 50전권과 10전권의 지급어음을 발행함으로써 총 8종의 소액 지급어음이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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