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백제사] 끝내 항복 않은 백제 ‘복국(復國)’ 의지(3)
[다시 쓰는 백제사] 끝내 항복 않은 백제 ‘복국(復國)’ 의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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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임존성에서 발견한 와편
임존성에서 발견한 와편

중국에서 발견된 흑치상지 비석

이렇듯 흑치상지는 당나라에 항복하여 오히려 임존성을 공격하는 역장(逆將)이 되었다.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도 흑치상지를 백제 복국운동의 배신자로 낙인찍고 있다.

<삼국사기> 열전 ‘흑치상지’ 조에는 그를 훌륭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사대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하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덕장의 풍모로 부각시킨 것이다.

“한 군사가 흑치상지가 타는 말에 매질을 했다. 부하 장수가 그 자를 죄주고자 하니, 상지가 ‘어찌 내가 타는 말을 매질하였다는 이유로 관병을 매질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받은 상은 모두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재물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가 죽자 사람들이 모두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며 매우 슬퍼했다(<삼국사기> 권 제44, 열전 제4 흑치상지조. 前略. 所乘馬爲士所箠 或請罪之 答曰 何遽以私 馬鞭官兵乎 前後賞賜 分麾下無留貲 及死 人皆哀基枉).”

그런데 재미있게도 1929년 흑치상지의 묘지석이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됐다. 북망산은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 ‘살아서는 항주(杭州), 죽어서는 북망’이라 할 정도로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흑치상지가 어떻게 묻히게 된 것일까?

이 비석이 한국 사학계에 알려진 것은 뒤늦은 1990년대다. 묘지석에는 모두 160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묘지석의 발견은 이제까지 중국 고대사인 <신당서>나 <구당서>에서 알 수 없던 흑치상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黑齒常之墓誌銘

大周故左武威衛大將軍檢校左羽林軍贈左玉鈐衛大將軍燕國公黑齒府君墓誌文幷序」

太淸上冠合其道者坤元至無高居參其用者師律不有命世之材傑其奚以應斯數哉然則求玉榮者必」

遊乎密山之上蘊金聲者不恨乎魯門之下矣府君諱常之字恒元百濟人也其先出自扶餘氏封於黑齒」

子孫因以爲氏焉其家世相承爲達率達率之職猶今兵部尙書於本國二品官也曾祖諱文大祖諱德顯」

考諱沙次並官至達率府君少而雄爽機神敏絶所輕者嗜欲所重者名訓府深沈淸不見其涯域情軌」

闊達遠不形其里數加之以謹慤重之以溫良由是親族敬之師長憚之年甫小學卽讀春秋左氏傳及班」

馬兩史歎曰丘明恥之丘亦恥之誠吾師也過此何足多哉未弱官以地籍授達率唐顯慶中遣邢國公蘇」

定方平其國与其主扶餘隆俱入朝隸爲萬年縣人也麟德初以人望授折衝都尉鎭熊津城大爲士衆所」

悅咸亨三年以功加忠武將軍行帶方州長史尋遷使持節沙泮州諸軍事沙泮州刺史授上柱國以至公」

爲己任以忘私爲大端天子嘉之轉左領軍將軍兼熊津都督府司馬加封浮陽郡開國公食邑二」

千戶于時德音在物朝望日高屬蒲海生氛蘭河有事以府君充洮河道經略副使實有寄焉府君稟質英」

毅資性明達力能翹關不以力自處智能禦寇不以智自聞每用晦而明以蒙養缶故其時行山立具瞻在」

焉至於仁不長姦威不害物賞罰有必勸沮無違又五校之大經三軍之元吉故士不敢犯其令下不得容」

其非高宗每稱其善故以士君子處之也及居西道大著勳庸于時中書令李敬玄爲河源道經略」

大使諸軍取其節度亦水軍大使尙書劉審禮旣以敗沒諸將莫不憂懼府君獨立高崗之功以濟其難轉」

左武衛將軍代敬玄爲大使從風聽也府君傍無聲色居絶翫好枕藉經書有祭遵之樽俎懷蘊明略同杜」

預之旌旗胡塵肅淸而邊馬肥漢月昭亮而天狐滅出師有頌入凱成歌遷左鷹揚衛大將軍燕然道副大」

摠管垂拱之季天命將革骨卒祿狂賊也旣不覩其微徐敬業逆惡也又不量其力南靜淮海北掃」

旄頭並有力焉故威聲大振制曰局度溫雅機神爽晤夙踐仁義之途聿蹈廉貞之域言以昭行學」

以潤躬屢摠戎麾每申誠效可封兼國公食邑三千戶仍改授右武威衛大將軍神武道經略大使餘如故」

於是董玆哮勇剪彼凶狂胡馬無南牧之期漢使靜北遊之望靈夏衝要妖羯是贍君之威聲無以爲代又」

轉爲懷遠軍經略大使以遏游氛也屬禍流群惡疊起孤標疑似一彰玉石斯混旣從下獄爰隔上穹義等」

絶頏哀同仰藥春秋六十長子俊幼丁家難志雪遺憤誓命虜庭投軀漢節頻展誠效屢振功名聖曆元年」

寃滯斯鑒爰下制曰故左武威衛大將軍檢校左羽林衛上柱國燕國公黑齒常之早襲衣」

冠備經駈榮亟摠師律戴宣績效往遘飛言爰從訊獄幽憤殞命疑罪不分比加檢察曾無反狀言念非專」

良深嗟憫宜從雪免庶慰塋魂增以寵章式光泉壤可贈左玉鈐衛大將軍勳封如故其男游擊將軍行蘭」

州廣武鎭將上柱國俊自嬰家各屢效赤誠不避危亡捐軀徇國宜有裒錄以申優獎可右豹韜衛翊府左」

郞將勳如故粤以聖曆二年壹月卄二日勅曰燕國公男俊所請改葬父者贈物一百段其葬事幔」

幕手力一事以上官供仍令京官六品一人檢校卽用其年二月十七日奉遷于邙山南官道北禮也惟府」

君孤峯偉絶材幹之表也懸鏡虛融理會之臺也言直而意忄尃無枝葉之多蔽謀動而事成有本末之盡美」

夙夜非懈心存於事上歲寒不移志在於爲下非君子之所關懷必不入於思慮非先王之所貽訓必不出」

於企想自推轂軍門建節邊塞善毁者不能加惡工譽者不能增美智者見之謂之智仁者見之謂之仁至」

於推財忘己重義先物雖刎首不顧其利傾身不改其道由是懦夫爲之勇貪夫爲之廉猶權衡之不言而」

斤兩定其謬騊駼之絶足而駑駘知其遠至於吏能貞幹走筆而雙璧自非鑒賞人倫守黙而千金成價固」

非當世之可效盖拔萃之標准也榮辱必也死生命也苟同於歸何必終於婦人之手矣余嘗在軍得參義」

所感其道頌其功乃爲銘曰」

談五岳者不知天台之翠屛也觀四瀆者不晤雲洲之丹榮也恭聞日磾爲漢之鞞亦有里奚爲秦之梯苟」

云明哲興衆殊絶所在成寶何往非晰惟公之自東兮如春之揚風兮文物資之以動色聲明佇之以成功」

兮悠悠旌旆肅肅軒盖擊鴻鍾鼓鳴籟云誰之榮伊我德聲四郊無戎馬之患千里捍公侯之城勳積旣展」

矣忠義旣顯矣物有忌乎貞罡刂行有高而則傷中峯落其仞幽壤淪其光天下爲之痛海內哀其良」

天鑒斯孔裒及存亡余實感慕爲之頌章寄言不朽風聽無疆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1992)

비문 가운데 백제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의역(意譯)해 본다.

“(전략) 부군(흑치상지)은 어려서부터 고상하였고, 기질과 정기가 민첩하고 뛰어났다. 가벼이 여기는 것은 기호와 욕망이었고, 중하게 여기는 것은 명예와 가르침이었다. 가슴 속에는 깊은 마음을 가졌으니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맑았다. 정감의 폭은 너무나 넓었으니 그 거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원대하였다. 20세가 안되어 가문의 신분에 따라 달솔(達率)을 받았다.

당(唐) 현경(顯慶: 656~660) 중에 당나라에서 형국공(邢國公)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그 나라를 평정하자, 그 임금 부여융(扶餘隆)과 함께 천자를 알현하였으니, 당에서는 이들을 만년현인(萬年縣人)에 소속시켰다. (하략)”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배반하고 당나라의 관리가 되어 직급이 높이 올라갔으나 결국은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다. 비문에는 689년 조회절(趙懷節)의 반란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흑치상지를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귀부자 흑치상지의 군부 내 입지 등을 우려한 조정이 역모로 죽인 것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지 10년 뒤, 흑치상지는 아들 준의 노력으로 누명을 벗게 된다. 그래서 이 같은 묘지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만약 당군에 항복하지 않고 지수신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임존성을 사수했다면 역사 평가는 달라졌을 게다.

흑치상지 묘지석
흑치상지 묘지석

가을 억새풀로 숙연한 임존성

성안 여기 저기 뒹구는 완연한 백제 와편과 깨진 토기편들. 1400년 전 전쟁의 상흔을 말 없이 증언하고 있다. 유백색의 백제 와편의 촉감은 언제나 따뜻하다. 어떻게 이처럼 고운 태토를 만들어 기와를 구운 것일까. 여기에도 백제의 놀라운 하이테크가 엿보인다.

삼국 중 가장 아름다운 기와를 만들었던 백제. 연꽃 와당을 보면 백제인들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을 바다 건너 왜가 배웠다. 그리고 백제 ‘구다라’를 신앙처럼 선망했다. 그런 위대한 백제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임존성만은 자존심을 지켰고 항복하지 않았다.

백제 복국운동의 성지 임존성의 가을은 장관이다. 이끼 낀 성돌 인고의 세월을 견딘 억새풀의 애잔함이 취재단을 맞는다. 억새풀 장관 사이 수줍은 듯 피어난 이름 없는 야생화가 오늘따라 처연하다. 1000여년 임을 기다린다는 상사초인가.

백제 부활, 복국을 위해 산화한 수만 영령들이 묻힌 임존성, 오늘따라 성벽의 칼바람 소리마저 전사들의 함성처럼 들려온다.

임존성
가을의 임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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