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와전의 비밀과 신비③] 용의 모양을 닮은 염유문(冉遗紋) 와당
[고구려 와전의 비밀과 신비③] 용의 모양을 닮은 염유문(冉遗紋) 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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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한국 신문사상 처음으로 아직 학계에 보고 안 된 이색 고구려 와당 자료를 특별 소개한다. 이 와당들은 중국 지안 일대에서 출토돼 한국에서 수장하고 있는 것으로서 고대 고구려 설화를 뒷받침하고 대륙을 지배했던 웅지의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글은 40년간 고대기와를 연구한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이 맡았다.
‘와당’이란 건축물의 옥개면을 장식한 건축자재이다. 마구리 기와라고 한다. 와당은 수막새와 암막새로 나누며 그 외면에 인면, 용면 그리고 아름다운 연꽃 등 장식을 넣었다. 지금 소개하는 와당들은 불교 도입 이전 1~2세기 때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사용처는 궁궐이나 관청 등으로 추정된다. (편집자주)

산해경에 등장하는 동물 흉사 막아

이재준 와당연구가,역사연구가, 칼럼니스트
이재준 와당연구가
역사연구가, 칼럼니스트

염유문(冉遗紋) 와당도 고구려 왕도 지안에서 출토된 유물 중 특이한 형태다. 염유문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동물로 뱀의 머리에 발이 여섯이며 용을 닮고 있다. 이 와당도 불교전래 이전(4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보통 와당보다 큰 편이다. 이 같은 와당을 사용한 당시 건축물이 매우 웅장했을 것으로 상정 된다.

와당은 중앙에 선각으로 작은 원형의 자방(子房)을 만들고 외구에 상하 하늘을 비상하는 듯한 염유 2구를 배치했다. 염유문은 머리 깃털과 꼬리가 힘차게 솟아있다. 위 염유문 보다 아래 문양이 더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다. 염유문 전면에는 장식을 만들었는데 어떤 모양인지는 분명치 않다. 주연은 넓고 무늬가 없어 이 와당의 연대가 높이 올라감을 알 수 있다. 크기는 경(徑) 20cm 주연폭은 2.5cm 자방크기는 2.2cm. 모래가 섞이고 경질이며 적색이다.

고구려 와당 염유문 앞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6.17
고구려 와당 염유문 앞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6.17

중국 산해경 기록을 보면 염유라는 동물은 영제산(英鞮山)에 살았다고 돼 있다. ‘산위에는 옻나무가 많이 자라고 기슭에는 금과 옥이 많이 나며 새 짐승이 모두 희다. 완수(涴水)가 여기에서 나와 북쪽으로 능양택(陵羊澤)에 흘러든다. 이곳에는 염유어가 많은데 물고기의 몸, 뱀의 머리에 발이 여섯이며 눈은 말 귀와 같다. 이것을 먹으면 가위 눌리지 않고 흉한 일을 막을 수 있다(山海经·西山经 -英鞮之山,上多漆木,下多金玉,鸟兽尽白。涴水出焉,而北流注于陵羊之泽。是多冉遗鱼,鱼身蛇首六足,其目如马耳,食之使人不眯,可以禁凶).’

이 기록에 보이는 ‘영제산’은 과연 어디일까. 중국 기록을 보면 영제산은 강산(剛山)에서 서쪽으로 380리에 있다고 돼 있다. 옻나무, 금과 옥이 많이 나는 곳을 상정하여 흑룡강성, 길림성 일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바로 부여와 고구려가 중흥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고구려 벽화에도 이 염유어가 등장하고 있다. 악귀를 쫓아 내세의 평안함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염유문을 와당에 까지 사용한 이면에는 대륙의 정통이 고구려라는 긍지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천제국(天帝國) 고구려 와당이 간직한 신비한 역사, 그 비밀은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이 점점 흥미롭기만 하다.  
 

고구려 와당 염유문 뒷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6.17
고구려 와당 염유문 뒷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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