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 일왕 퇴위와 새 日王 즉위… ‘천황제’ 보는 일본인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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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30일 퇴위를 앞두고 18일 미에(三重)현 이세시(伊勢)시에 있는 이세신궁에서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넘겨 줄 '3종 신기'를 꺼내오고 있다(출처: 뉴시스)

아키히토 일왕이 30일 퇴위를 앞두고 18일 미에(三重)현 이세시(伊勢)시에 있는 이세신궁에서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넘겨 줄 '3종 신기'를 꺼내오고 있다(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日 레이와 시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의 즉위 의식이 30일과 5월 1일 이틀에 걸쳐 일왕 거처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고쿄(皇居)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즉위를 알리는 행사들은 왕실 전범에 따라 5개월이 지난 10월 22일부터 시작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3월 12일 고쿄 내 신전인 규추산덴(宮中三殿)에서 조상들에게 퇴위의 뜻을 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26일 공식 외부일정을 마무리했다.

고쿄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리는 퇴위 의식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아키히토 일왕이 마지막 소감을 밝힌다. 아키히코 일왕은 퇴위 후 상왕이 된다.

27일부터 10일간 ‘골드위크’로 긴 연휴에 들어간 일본은 새 일왕의 즉위를 두고 전반적으로 들떠있는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대일본제국헌법’으로 천황은 통치권을 총괄하고 국가의 주권자가 되면서 신성시돼 왔다.

새로운 왕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희망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크지 않다.

일단 아키히토 천황에 대한 일본 국민의 감정은 여전히 좋다. 진보적이면서 평화주의자며, 일본인들의 아픔을 걱정하는 따뜻한 왕이라는 인식 때문에 소수의 반대파를 제외하면 긍정 여론이 많다. 

도쿄에 살고 있는 한국인 최정호씨는 “일본 학교에서는 천황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일본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을 공유할 장소나 상황도 찾아보기 힘들다. 연호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인식이 사라진 것 같다. 언론 역시 분위기를 띄우지만 젊은 세대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933년생인 아키히토 일왕은 히로히토 선왕에 이어 1989년 즉위한 이래 30년간 재임해왔다. 일왕은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신적인 존재로 일본 국민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히로히토 일왕은 2차 대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신의 신격(神格)을 부정하는 ‘인간선언’을 했고, 같은 해 11월에 ‘일왕에게는 국정의 권능이 없다’는 내용이 명시된 일본 헌법이 공포되면서 일왕의 역할은 그저 상징적 존재로 대폭 축소됐다.

선친인 히로히토 일왕과 대비해 현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세계평화를 강조하면서 일본의 번영과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일왕의 현재 포지션은 정치적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이다. 일왕의 새로운 교체에 대해  도쿄에 살고 있는 간호사 메구미(35)씨는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사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영국인들처럼 큰 관심은 아니지만, 여전히 일본 역사인 일왕에 대해 지지하는 추세”라며 “많은 관심이라기보다 일왕 체재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거리에서든 커피샵에서든 천황제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 큰일 날 수도 있다”며 “대단히 예민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후 80년 가까이 인간의 모습을 한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 군림했던 일왕의 잔영은 여전히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하라 다케시(原武史) 일본방송대 교수는 최근 출판한 ‘헤이세이의 종언’에서 “천황제에 관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없다”며 “일왕에 대한 ‘감히 언급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도 국민 머릿속에 뿌리 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본 국민에게 일왕을 신격화시키려는 우익 세력과 ‘편한 왕’으로 보려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시각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신격화로 군림했던 아버지 히로히토의 그림자를 벗기 위해 노력했다. 침략전쟁의 책임자였던 아버지 히로히토가 전쟁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오키나와를 11차례나 방문했다.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총 20만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일인 1945년 8월 15일에 관해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도 몇 차례 방문했던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靖国)신사도 일왕 재임기간 찾지 않았다. 지난 일본의 잘못된 역사와 무조건적 국수주의를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새 왕의 즉위는 강경파인 우익들에게는 뭉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며, ‘천황제’가 앞으로 계속 시스템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루히토 새 일왕의 즉위는 5월 1일에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진다. 먼저 5월 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0분간 마쓰노마에서 ‘겐지토쇼케이노기’로 불리는 의식이 진행된다. 청동검·청동거울·굽은구슬 등 삼종신기라 불리는 일본 왕가의 상징물을 새 일왕이 넘겨받는 행사다.

한편 29일 새 일왕 즉위에 반대하는 일본의 일부 시민들이 도쿄에서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시위자들은 ‘반(反)천황제, 반전(反戦), 개헌 저지’ 등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천황제 폐지를 쟁취하자” 등 구호를 외쳤다. 거리 행진 중에는 시위자들에 반대하는 극우 시민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맞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 정치 평론가들은 군사 대국화 등 일본의 우익적 분위기를 통해 내각 지지율을 올리려는 아베 신조 총리와 전후세대로 첫 일왕에 오른 나루히토 새 일왕이 어떤 호흡을 할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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