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이야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명저 이야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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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삶 자체가 ‘반체제’적이었다. 그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비롯 <제1원> <암병동> 등 모든 문학 작품은 물론, 망명 등 그의 인생을 돌아보건대 당시 구소련의 불합리한 사회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고발했다.

솔제니친은 반소(反蘇)행위를 했다는 통보를 받고 1945년부터 약 8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삶을 보냈다. 그간 자신이 겪은 고통과 어두운 세월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 담은 것. 그는 작품을 통해 당시 노도수용소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허상에 대해 낱낱이 토로했다.

소설 주인공인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나 정부로부터 ‘반역죄’를 선고받고 노동수용소에 갇힌다. 소련 정부는 그가 이틀간 독일 포로생활을 했던 것을 꼬투리 잡았다. 반역죄의 내용은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됐으며,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 풀려났다는 것이다.

슈호프는 정부의 말에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은 채 수용소행을 택한다. 주인공은 형을 마칠 때까지 순응적으로 살아가려 한다. 건장한 사내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식사량에도 불평을 하지 않고 간수들이 시키는 대로 수용소의 규칙을 그대로 수용한다.

작가 솔제니친은 당시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수많은 약자를 억압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소설 속에서도 지독히 가혹한 상황을 겪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주인공 슈호프 외에도 같이 수용소에서 부대껴 사는 인물들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슈호프처럼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죄수들은 ‘살아남기’위해 먹는 것부터 작업배당, 눈속임 등 반복되는 일상을 ‘어쩔 수 없이’ 순응해 나간다. 이들에게 체면은 중요하지 않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게 자신들의 책임이요 몫이다.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고 생을 연명하는 이유는 기약 없는 석방이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의 염원을 솔제니친이 그대로 담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해방을 손꼽다 기다리는 사람들. 이는 일제강점기의 우리네 모습과도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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